주제전: 아홉 가지 공유

인간이 자연환경을 변형시키는 인류세(人類世)의 등장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위기에 따른 시나리오는 도시계획전문가와 건축가의 작업이 이제 소용없어졌음을 의미할까? 도시 계획은 정치 영역에서 추방되어, 이제는 자본 재분배의 손에 맡겨진 것일까? 일부 경제학자들은 반대로 도시계획, 주거, 부동산이 도시 불평등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주장한다. 도시는 정치체계의 수립보다 앞서 있으며, 정치체계보다 체계적으로 더 오래 지속되어 종종 권력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낸다.

도시가 권력구조와 불평등 또는 환경파괴를 낳는 도구가 아니라 공유재를 위한 도구가 되려면, 도시계획의 중심에 자원과 기술을 배치해야 한다. 권력이 쉽게 포착할 수 있는 기능들로 도시의 삶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우선 공유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원과 기술이 수평적 권력 이동과 생태의식 향상을 위한 도구로 공유재를 재구성하는 방법을 파악해야 한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공유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공유재가 어떻게 도시계획 수정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새로운 공유재 중심의 관점을 구성하기 위하여 '공기, 물, 불, 땅'의 네 가지 공유자원과 '만들기, 움직이기, 소통하기, 감지하기, 다시 쓰기'의 다섯 가지 공유 양식을 바탕으로 도시 우주론을 수정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네 가지 공유자원: 공기

공기는 모든 생명체를 결속하는 본질적인 공유 자원이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칠백만 명 이상이 공기 질환으로 사망한다. 환경 위기에 처한 도시들은 실시간 환경정보, 인공 강우, 탄소 격리 기법, 단열 냉각 등의 기술을 사용해 대기 오염을 줄이고 자연 환기를 촉진하고자 한다. '공기와 같은 보편적인 공유 자원에 대해 어떻게 도시 단위의 관리와 정책을 세울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가 환경 문제에 앞장서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비엔날레는 공기와 관련된 기술, 정책, 생활양식,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한다.

네 가지 공유자원: 물

물은 도시 문명의 태생적 기반이자 21세기의 가장 소중한 공유 자원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식수원의 오염, 수자원의 사유화와 보안 문제는 도시의 미래상을 바꾸고 있다. 세계 곳곳의 수변 지역 도시가 위기에 처해 있고 물 부족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비엔날레는 친환경 건축과 식생 수로의 개발, 도시 지하수와 우물의 복원과 관리 등 미시적인 대책에서부터 수변 도시 공간의 재조정, 국가와 자치단체를 잇는 거버넌스 시스템에 이르는 영역을 광범위하게 탐구한다.  

네 가지 공유자원: 불

불은 도시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자원이자 공동체의 문화 양식을 규정 짓는 공유재이다. 기후 변화, 환경 오염, 자연 재해, 자원고갈로 근대적인 화석 연료 체제가 태양열, 바람, 조수, 땅에 기반한 수평적인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시스템은 지역의 기후와 지질 환경, 도시 조직과 건축 유형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지역 차원의 정책과 도시 건축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야 한다. 

네 가지 공유자원: 땅

땅은 지형, 토양, 식생, 조경, 식량을 모두 포함한 공유의 복합체이다. 토지가 사유화 될지라도 생명력의 근원인 땅은 공유 자원이다. 지구물리학과 기후학에서 산정하는 지구의 표면 에너지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시의 건축이 땅의 일부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땅의 논리를 존중하는 건축에 생명공학과 친환경 기술이 도입될 때, 도시건축이 수자원, 에너지, 기류의 순환 체계와 융합된 새로운 도시 우주론이 실현된다. 

다섯 가지 공유양식: 만들기

도심 제조업은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후기 자본주의 도시의 중심부로부터 추방되었다. 20세기의 대도시가 부동산과 금융 논리의 지배를 받고 소비 현장으로 전환되면서, 도시는 혁신의 동력원을 상실하고 극심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겪었다.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미래상을 위해서는 도심 제조업과 도시의 소상공업이 살아나야 한다. 게다가 현대에는 새로운 디지털 생산 기술의 등장으로 도심부에서 고부가가치 생산 활동의 가능성이 열렸다. 서울비엔날레는 새로운 기술, 유통시스템, 시장의 수요, 그리고 건축 공간이 엮어진 도시적 호모 파베르의 공유 문화를 제시할 것이다. 

다섯 가지 공유양식: 움직이기

도시 속에서의 움직임은 사회적인 공유 양식이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것만큼이나 움직이는 과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도시가 움직일 때 많은 에너지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될 수 있다. 그래서 보행이 활발한 도시가 바로 공간과 사회 환경이 모두 건강한 도시다. 전기 기반의 교통 체계, 자동차와 자전거의 공유 시스템, 인지 학습 능력을 갖춘 이동기기 등 스마트 모빌리티와 보행 친화적인 도시건축이 융합될 때 효율적인 친환경 교통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은 물론 건강하고 생산적인 도시가 구현된다.

다섯 가지 공유양식: 소통하기

근대 도시는 거주, 생산, 여가, 교통이 각각 분리되어야 한다고 전제하였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도시의 경제, 기술, 사회의 급변으로 인하여 탈영토화 과정을 밟고 있다. SNS를 비롯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시스템과 분산되어가는 생산 체계는 도시의 사회적 규범을 혁신시키고 강력한 공유 양식을 창출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홈 오토메이션이 보편화되고, 업무와 가정, 공공의 영역이 통합된 융합적인 공간이 확산되면서 도시의 구조가 바뀌고 궁극적으로 도시 거버넌스도 변하게 될 것이다.  

다섯 가지 공유양식: 감지하기

센서 네트워크, IoT, 증강현실, VR 장치가 보편화 되면서 공간적인 한계가 없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지워져 버린 유비쿼터스 감각이 형성되고 있다. 유비쿼터스 감각의 세계에는 극단적인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센서와 연결된 스마트 장치들이 도시의 다양한 패턴을 실시간으로 알려줌으로써, 도시 환경에 대한 연속된 의식이 가능해졌다. 다른 한편, 프라이버시가 사라진, 개인 정보가 자본과 권력의 소유물이 되는 감시와 통제의 시대가 왔다. 이러한 감지 장치들은 도시의 패턴과 환경에 대한 의식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화시킬 것이다.

다섯 가지 공유양식: 다시 쓰기

자원을 무한정 소모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고 버릴 수 있다는 근대의 허상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는 도시를 지탱하는 하부구조와 기초 자원을 재생하고 재활용하는 문제가 도시 정책의 핵심이다. 폐기물과 바이오 고형물의 유통과 관리는 지역 단위의 토지 관리에서부터 전지구적인 유통 시스템과 직결된 지정학적 문제가 되었다. 기능을 잃은 도시 지역과 기반 시설은 개발이 아닌 재생의 논리를 통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 재생과 재활용은 시민들이 생활 환경과 일체가 될 수 있는 활동인 만큼 본질적인 문화 행위이다.